어렸을 때, 여러 가지 꿈이 있었다.
현모양처, 유치원 보모, 선생님, 과학자.
이 중 이룬 꿈은 한 가지이다.
교사 자격증은 가지고 있으니, '선생님'이라는 꿈은 반 정도 이루었다고 치면 한 가지 반 정도 되려나.
딱 유치원 정도 나이의 아이들과 잘 노는 것도 남들이 인정하는 내 품성의 일부이니, 난 현실적인 어린애였나 보다.
남은 것은, 이루고 싶어 왔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'현모양처'의 꿈.
중학생 무렵 '결혼'에 대해 내가 그렸던 이미지는 이거다.
그림같이 예쁜 단독 주택, 나에게 자상하고 든든한 남편과 두 아이와 함께 하는 행복한 가정.
(웨딩 드레스나 허니문 같은 건 지금까지도 그다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.)
세월이 제법 흘렀지만, 그 때 간직한 꿈을 나누고 싶은 사람은 아직 없다.
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뭣하지만-그러면서도 하는 건 무슨 심보일까- 이래 저래 교제를 신청하는 사람이 나타나곤 한다.
길을 가다, 출장 중에 모르는 사람이 대쉬하는 일이 있기도 하다.
호감을 가지고 있는 남자 친구도 있다.
그렇지만,
그렇지만.
뭔가가 모자란다.
남들은 무슨 눈이 그렇게 높냐며, 그 정도면 괜찮지 않냐며 "보통은 말야..."라고 훈계를 시작하곤 한다.
"조건은 괜찮지만, 나이가 있잖아"라는 말을 잊지 않고 덧붙인다.
나는 나인데 왜 타인의 잣대가 필요한 걸까.
난 결혼에 목숨을 건 것이 아니다.
내가 일생을 바쳐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,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싶은 것이다.
내 갈증을 알지 못 하는 사람들에게 휘둘려 타협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은, 오래 전부터의 결심이다.
"첫 눈에 반하는 사랑 따위, 현실이 아니라 꿈이잖아!"
늘 그런 말을 하고 있지만, 어쨌든, 내게는 '이 사람이다!'라는 확신이 필요하다.
인생의 중요한 대목을 결정해 온 나의 '직감'이 인정해야 한다.
아무래도 인연이 아닌 것 같은 사람에게, 괜한 시간과 감정의 소비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은, 과거의 경험에서 확인한 결과다.
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고.
한 친구가 늘 나에게 해 오고 있는 말이 있다.
"너, 그런 기사 봤지? 연애도 오랫동안 쉬면, 연애 세포가 죽는다는 거. 누가 결혼 생각하래? 그냥 편하게 마음 가는 대로 만나 봐. 나중에 진짜 인연을 만났을 때 연애 못 해서 헤어지면 어쩔 건데?"
꽤 오래 무시해 왔지만, 계속된 설득에 살짝 마음이 움직여 큰 맘 먹고 조금 움직여 봤다.
두 번 만나면 진짜 인연인 지 아닌 지 알아 본다고 큰 소리 쳐 온 나로서는 익숙하지 않은 선택이었다.
약간은 효과가 있었다.
내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재확인.
사람과의 만남은 머리로 하는 생각이 아니라 마음과 감정의 흐름에 맡기는 거라고들 하지만, 내 안의 본능이 외치는 경고는 무시할 수 없다.
"이건 아니다."
인연이 아닌 사람과 친구는 될 수 있지만 연인이 될 수는 없다.
나를 위해서도, 상대방을 위해서도.